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1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조 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논 문 요 약 ◈ 국민통합은 평화와 번영의 디딤돌이 다.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새 역사를 만드는 도정에 국민 모두가 동참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념, 지역, 계층, 세대 간 갈등이 해소되는 국민통합의 장(場) 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 한국사회에 서 보혁갈등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 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보혁갈등 의 대표적인 형태는 민족화해 과정에서 나타난 남남갈등이다. 남남갈등은 통일 및 대북정책을 둘러싼 궁극적 목표, 현 실인식, 접근방식 등의 차이에서 오는 이념적 갈등 양상이다. 보혁대결의 가 장 중심축인 남남갈등은 통일관, 대북 인식, 대북정책, 북한 핵문제, 한미동맹 과 주한미군 문제 등 한미관계 일반으 로부터 보다 추상적인 평화, 분단극복, 민족문제 등 모든 사안에 대해 대립축 을 형성하고 있다. 대북인식과 한미관 계의 문제를 둘러싼 친북적 성향은 반 미로, 반북적 성향은 친미로 연계된다 는 점에서 ‘친북=반미’와 ‘반북=친미’로 바라볼 수 있다.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 해서는 첫째, 정치지도자의 통찰력과 리더십이 절실히 요청된다. 둘째, 정부 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하다. 국론통합 은 커녕 자칫 국론분열의 소지를 제공 할 수 있는 복합적 상황에 대한 면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득과 타협을 끌어낼 수 있는 조정능력이 요구된다. 셋째, 공 동체의 조화와 구심력을 유지하려는 오 피니언 리더들의 균형감각과 역할이 무 척 중요하다. 합의창출의 방향으로, 최 소한 좌·우 모두 양 극단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국민적 콘센서스가 이루 어져야 한다. 우리는 국가공동체를 유 지하고 존속시키기 위해 양 극단의 배 제, 법치주의 존중 등의 최소한의 규범 준수에 대한 그야말로, ‘최소주의적 합 의’에 동의할 필요가 있다. 조선국민에게 동족상잔은 언제나 죄악이다. 그것은 다만 민족의 역량을 소모하고 조 국의 재건을 지연할 뿐이다. 더욱이 도에 넘친 잔인한 행위는 국제적으로 조선민족의 위신을 추락케 하여 독립을 방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얼마나 비탄한 일이냐? 여러분! 지금부터 여러분은 정치상, 경제상 어떠한 불행, 불만이 있든지 2 統一政策硏究 또는 좌거나 우거나 어떠한 악질적 선동이 있던지 그 선동에는 속지 말고 여러분의 불평불만은 합법적으로 해결을 얻기로 하고 각각 고생스러운 생 활을 참고 지켜가면서 동포끼리 서로 싸우는 비극은 즉시 그칠 것이다. 살벌과 파괴와 방화 등은 가장 큰 죄악이요 민족의 대불행이다. 여러분 은 다만 합작에 의한 고심참담한 건설을 함께 신뢰하고 지지하면서 총역 량을 집합하여 이 중대한 시국을 수습키로 하자! 미군정청과 좌우합작위원회 공동회담 개최에 즈음한 한미공동성명 1946년 10월 26일 Ⅰ. 서론 : 국민통합의 당위성 동강난 산하(山河), 찢겨진 국민. 이는 남북분단의 역사 위에 남남분열 의 현실을 표상하는 말이다. 이 경우 ‘한 민족, 두 국가(one nation, two states)’ 상태에, ‘한 국가, 두 국민(one country, two people)’의 갈라 지고 찢긴 형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 이러한 최악의 시나리오는 반드시 거 부되어야 한다. 국민통합은 평화와 번영의 디딤돌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제16대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개혁은 성장의 동력이고, 통합은 도약의 디딤돌”이라는 인 식하에, 국민통합이야말로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숙제”라는 점을 역설하 였다. 그런즉 평화와 번영과 도약의 새 역사를 만드는 도정에 국민 모두가 동참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념, 지역, 계층, 세대간 갈등이 해소되는 국민 통합의 장(場)이 마련되어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21세기 한국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보 다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정치세력의 지지와 열망을 기반으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우리 사회는 노사갈등을 비롯하여, 특히 한반 도의 평화와 통일 문제를 둘러싸고 진보좌파와 보수우파간 이념적 대립 양상인 보혁(保革)갈등의 진통을 겪고 있다.1) 이러한 보혁갈등으로 인한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3 ‘남남갈등’은 심각한 국론분열로 인식될 정도로 점점 더 골이 깊어가고 있 는 실정이다. 최근 한국사회의 보혁대결은 과거의 이념 갈등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역대 정권에서 정치적 비판세력이었던 진보성향의 정치세력이 역사상 최초로 집권에 성공함으로써 전통적인 보수헤게모니의 정치지형에 결정적인 균열을 가져왔다. 이러한 정치균열은 진보좌파와 보수우파 양측 모두 충분히 예상하거나 준비하지 못한 상황이었으며, 이 과정에서 이념적 헤게모니의 전도(顚倒)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에 한국의 진보세력은 지금 이 ‘역사적 국면’에 쐐기를 박고 다시 ‘보수반동의 계절’로 회귀하지 못하도록 더욱 강렬한 정치적·이념적 드라이브를 요구하고 나섰다. 다른 한편 민주화시대 이래 한국정치의 역학구도에서 경향적 퇴조의 길을 걷고 있던 산업화주도 정치세력과 한국사회의 이념적 지형에서 점차 왜소화되 고 있던 보수세력은 그들 존재 자체의 의의와 역할이 철저히 부정되는 현 실 속에서 상당한 분노와 함께,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절박한 위기 감으로 일전불사의 의지를 결집하고 있는 중이다. 정치영역 뿐만 아니라, 학계, 종교계, 언론계(신문, 방송, 인터넷), 문화예술계, 산업현장, 시민단 체, 심지어 교단에까지 불어닥친 “내편-네편”의 ‘편 가르기’로 온 나라는, 해방정국에서 분출되었던 극단적 좌우대결의 소용돌이처럼, 또다시 집단적 어리석음과 광기(狂氣)에 사로잡혔다. 이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지금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과거 정부는 시민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산업화와 근대화 등의 국가목 표를 통해, 반공적 체제유지를 위해 체제비판 세력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한편, 국민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특히 온 국민이 궁핍으로부터 탈출 하자는 ‘위로부터의’ 정부 주도의 국정목표를 한국인의 집합적 의지로 결집 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잘살아 보세!’라는 정부 주도의 구호 한마 디에 모든 국민이 열광적으로 따랐던 그러한 집합의지(‘엘랑’ élan)를 기 대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오히려 현실은 그러한 상황과는 정 반대로, 민주화가 진전되어 가면서 과거 국가에 의해 억압되었던 시민사회 1) 이 글에서 진보=좌파, 보수=우파로 구분하는 입장은 우리 사회의 일반적 인 사회적 통념에 따른 접근 방식이라 할 수 있다. 4 統一政策硏究 의 자율성이 보장되고 시민사회가 국가를 포섭하는 구조 위에서 국가의 정책목표를 위한 ‘위로부터의’ 국가 주도의 국민통합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으며 오히려 국정목표의 설정 자체가 국민을 분열시키고 시민사회 내 갈등을 유발하는 계기로 작용하면서 국정 수행과정에서 많은 난관에 부딪 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럼에도 국민통합 문제를 주요한 국정 과제로 삼지 않을 수 없는 데에 는 남북한 화해협력 과정에서 대북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광범한 국민적 합의기반을 확충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우리 사회 내부 에서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나타나고 있는 남남갈등의 극복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즉, 민족화해 못지않게 남남대화도 중요하다 는 인식이 고취되면서2)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계층, 지역 그리고 세대를 아 우르는 국민적 통합의 절실함이 부각되었다. Ⅱ. 보혁갈등의 배경 및 존재양태 1. 보혁갈등의 배경 최근 한국사회에서 보혁갈등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 나고 있다. 보혁갈등의 대표적인 형태는 민족화해 과정에서 나타난 남남갈 등이다. 남남갈등은 통일 및 대북정책을 둘러싼 궁극적 목표, 현실인식, 접근방식 등의 차이에서 오는 이념적 갈등 양상이라 할 수 있다. 남북한 분단체제가 타파되지 않는 한 통일정책의 추진과 한반도 문제의 접근방식 을 둘러싼 보혁갈등은 쉽사리 해소되기 어렵다. 좌우대립 또는 보혁갈등은 분단체제 자체에 내장된 고유한 속성이다.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는 분 단체제의 쌍생아로서 냉전시대의 오랜 관행적 침묵 상태를 깨고 최근 한 국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대립적·갈등적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김대 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둘러싼 지지와 비판이 남남갈등을 야기한 계기였다 2) 1998년 9월, ‘민족화해’를 모토로 설립된 통일운동협의체인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는 다음해 1999년에 ‘남남대화’의 중요성을 지적했다. 민화협 정책위원회 편, 「민족화해와 남남대화」(한울아카데미, 1999), 참조.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5 면, 그러한 남남갈등의 배경 위에서 노무현 정부의 대미인식과 대북정책은 한국 사회의 다양한 입장과 이념의 차이를 보다 뚜렷이 드러내는 균열점 으로 작용했다. 가. 보혁갈등은 좌파 우파 모두 위기의식의 표출이다 한국사회의 국론분열로, 최근 시민사회 내 투쟁적 대결양상으로 나타나 고 있는 보혁갈등의 특징은 좌·우 양측 모두 심각한 위기의식의 표출이라 는 데에 있다. 위기의식은 진보주의적 좌파의 입장에서는 한국현대사의 굴 곡 속에서 마침내 집권 고지에까지 올랐지만, 이 ‘역사적’ 계기를 지켜내고 진전시킬 수 있는 물질적 토대가 충분히 구축된 상태도 아니며 더욱이 정 치적·이념적 헤게모니를 완전히 장악한 상태도 아니라는 데에서 긴장과 위 기감이 나타날 수 있다. 여기서 보수 세력의 반격과 특히 외세 즉, 진보주 의적 좌파의 존재와 향방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외생 변수인 미국의 입 장이 진보세력의 집권에 결코 우호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에 대한 비 난과 함께 우려감이 중첩되고 있다. 보수우파의 위기의식도 심각한 수준이다. 보수우파는 두 번에 걸친 대 통령 선거에서의 패배로 엄청난 충격과 좌절로 거의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지다시피 했다. 여기에다 분단 반세기 동안의 보수우익의 이념과 가치체 계였던 반공자유주의가 해체되면서 남한 사회 내 친북성향이 확산되고, 한 미동맹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보수주의자들이 설 땅조차 찾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국의 미래가 암담하다는 분노와 우려가 점증하고 있었다. 이처럼 보수우파는 정치적·이념적으로 자기 위상을 정립하지 못하 고 있던 상황에 북핵 문제와 현 정부 출범을 전후로 주한미군과 한미동맹, 그리고 이라크 파병 문제 등을 둘러싸고 (반북)반핵과 국익의 기치아래 보수우익의 존재 확인과 결집을 과시함으로써 정치적·이념적 패퇴의 위기 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현 단계 한국사회의 좌·우 대치구 도가 이와 같은 심각한 위기의식에 기인한다면, 이러한 갈등양태는 돌출적 이고 과격한 언행을 낳을 수 있고 비타협적이고 가치편향적인 논리와 주 장은 점차 극한적 투쟁양식과 폭력으로 기울어질 경향성이 높다는 점에서 6 統一政策硏究 무척 우려되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사회운동의 모멘트는 왜곡된 억압체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자기희생을 통한 도덕성을 행동의 준거로 삼는데, 현재 우리 사회의 보혁갈등은 “밀리 면 끝이다”, “더 이상 밀리면 자멸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극단적 언 사와 과격한 행동을 표출하고 있는 상태다. 그런데 보혁갈등의 근저에 우 리 사회의 젊은 세대의 ‘닫힌 미래’ 즉, 미래전망의 부재를 반영하는 측면 도 있다는 사실이 주목된다. 이 경우 보혁갈등은 세대갈등과 중첩되어 나 타나는데 보수주의적 중장년층이 사회적 기득권 상실을 우려하고 있다면, 젊은 세대는 그들의 꿈과 능력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기회가 구조적으 로 차단되어 있는 현실에 커다란 불만과 좌절을 느낀다. 젊은 세대의 상당 한 부류는 부는 세습되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능력있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는 공정한 경쟁의 룰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거부감도 심 각한 수준이다. 성공의 야망에 비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데 깊은 불만과 좌절의 늪이 있다. 이러한 세대간 단절과 상호배제의식이 반 영된 보혁갈등은 희망의 대결이라기보다는 절망간의 충돌로 나타날 수도 있다. 나. 보수주의자의 초상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스스로 건국의 주역으로, 산업화의 주체세력이 자 주력군으로 자임해왔다. 오늘날 한국사회의 경제적 성공의 신화는 마땅 히 보수주의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당연한 몫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수 주의자들은 지금 그들의 자식 세대로부터 아무런 존경을 받지 못하고 어 떠한 감사의 말을 들어보지도 못한 가운데, 오히려 ‘수구꼴통’으로 혐오와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보수주의는 역사 해석에 서 패배했고, 스스로의 이미지 관리에서도 실패했다. 이 모든 결과는 바로 현실에 안주하고 변화를 거부하면서 수구기득권층으로 전락하고만 보수주 의자 스스로에게 귀책사유가 있다. 말하자면 보수주의자들은 오랫 동안 역 사와 미래에 대한 성찰(省察)능력을 상실해왔으며, 심지어 산업화 과정의 어두운 진실에 도전해온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려는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7 의지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3) IMF로 인한 우리 사회의 광범한 충격은 중산층의 몰락과 해체의 가속 화로 나타났다. 이미 IMF 충격 이전부터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의해 우 리 사회 기층 민중의 배제와 중산층의 해체가 진행되어 왔으나 IMF로 인 해 우리 사회의 대다수 성원의 전통적인 중산층의식조차 사라지고 말았다. 중산층의 몰락은 극심한 계급적 양극화 현상을 초래했으며, 그 결과 정치 사회적 불만이 팽배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의 부재로 사회적 구심력이 상 실되었다. 이 과정에서 보수특권층에 대한 증오와 엘리트계층에 대한 실망 과 혐오로 사회변혁의 열망이 고조되는 가운데 민중주의적 지향성을 표방 하는 포풀리즘적 형태의 주장에 동의하는 분위기가 배태되었다. 사회경제 적으로 특권 향유의 기득권층은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 라, 정치사회적 엘리트층은 한국사회의 미래를 담당하기에는 이미 부패와 부정의의 대명사이자 극복대상으로 인식되었다. 다. 진보좌파의 존재이유(raison d'être) 현실 사회주의의 대실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좌파는 살아남았다. 여기 엔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의 짙은 그림자가 사회정의의 비판의식을 다시 일 깨웠던 것이다. 자유시장의 신화를 신봉하면서 궁극적으로 초국적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신자유주의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없으며, 한국사회 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의해 해체되고 모든 인간의 삶의 조건이 피폐 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신자유주의 즉, 자본주의에 배한 비판세력으로 한국사회에서 좌파의 존재이유가 재발견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국제기구와 초국적 금융자본의 이익과 일치하는 미국의 세계지배 전략으로 강요된 현실이다. 신자유주의 강령인 ‘탈규제 화, 자유화, 민영화’의 세 가지 흐름은 국가이데올로기 수준으로 격상되면 3) 보수정치인의 자기진단인 “우리 보수는 무엇을 잘못했는가?”라는 글에서 4가지 잘못을 술회했다. 첫째, 지향해야 할 가치에 투철하지 못했다. 둘째, 내부 기 회주의와 기득권 세력에 관대했다. 셋째, 자기 혁신과 변화를 주저했다. 넷째, 유능하고 참신한 차세대를 키우지 못했다 등으로 요약한 바 있다. 최병렬, ‘대 한민국 한국정치 한나라당이 가야할 길’(2003. 5. 27). 8 統一政策硏究 서 미국과 국제기구의 경제정책의 전략적 도구로 기여했다. 미국 경제는 모든 대항세력과 국제적 통제로부터 벗어나 “승리자가 모든 것을 갖는다” 는 하나의 철칙을 관철시켰다. 1990년대 초부터 전 지구를 휩쓴 세계화 는 자본의 자유를 위한 이데올로기로, 자유무역을 통한 복리증진은 허구적 논리로, 민주주의와 삶의 질에 대한 무차별적 공격으로 나타났다. 세계적 차원의 경제적 통합, 즉 세계화 과정이 동반하는 결과는 한편으로는 미국 을 비롯한 전 지구적 패권국가와 제3세계 비유럽국가 사이의 증폭되는 간 극과 함께,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이든 한국이든 지구상의 모든 국가의 중 산층의 몰락과 더불어 자본주의의 역사만큼 오래된 분배갈등을 더욱 첨예 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4) 특히 이 과정에서 한국의 진보주의적 좌파는 신자유주의의 본산인 미국 을 한국 민주주의와 한국 민중의 삶의 기반을 위협하는 새로운 제국주의 로 규정하면서,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한 통일에 대한 ‘우리 민족끼리’의 민 족주의적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하나의 ‘외세’로서 극복대상으로 인식하 는 경향을 보였다. 이처럼 한국의 반미감정은, 오래 동안 반미감정의 무풍 지대였지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충격과 한국의 민주주의와 경제력에 조응하는 국가적 위상과 민족적 자주의식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한미관계 등은 비판과 극복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2. 보혁갈등의 존재양태 보혁대결의 가장 중심축인 남남갈등은 통일관, 대북인식, 대북정책, 북 한 핵문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 등 한미관계 일반으로부터 보다 추 상적인 평화, 분단극복, 민족문제 등 모든 사안에 대해 대립축을 형성하고 있다. 대북인식과 한미관계의 문제를 둘러싼 친북적 성향은 반미로, 반북 적 성향은 친미로 연계된다는 점에서 다소 과도한 단순화를 시도한다면 ‘친북=반미’와 ‘반북=친미’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남남갈등에 대한 이해방식으로, 남남갈등은 분단 반세기 이상의 4) 한스 페터 마르틴·하랄트 슈만 지음/강수돌 옮김,「세계화의 덫」(영림카디널, 1997), pp. 189~247.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9 적대관계가 남북한 화해협력관계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상황 즉, 한반도 냉 전체제의 해체과정에서 나타나는 불가피한 진통이라는 논리가 일반적이다. 사실 과도기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문제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은 두 측면에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하나는 남북한 화해협력 의 역사적 당위성을 전제로 화해협력의 패러다임이 자리잡으면 남남갈등 은 자연스럽게 해소된다는 통과의례적 진통으로 보는 시각이다. 모든 정치 사회적 갈등은 궁극적으로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사고방식은 인류의 경험 원칙에 비춰 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엄연한 현실적인 남남갈등의 극복 에 구체적인 시사점을 주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남남갈등은 남북한 ‘화해 협력’의 역사적 대명제에 동의하지 않거나 아직 냉전의식을 극복하지 못한 데에서 나타나는 갈등으로 설명한다. 이 경우 남남갈등은 화해협력론과 냉 전의식과의 갈등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파악되면서 갈등의 한 당사자는 다른 측에 의해 설득과 홍보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구도에서 남남갈등의 양 당사자의 서로 다른 입장의 경청을 통한 존중과 상호이해의 틀을 발견 하기는 어렵다. 가. 좌·우 역할의 전이현상 우리 사회의 갈등은 민주화 이후에도 좌·우 갈등은 내연(內燃)하고 있었 으나, 김대중 정부이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좌·우 갈등의 새로운 특성은 내생적(endogeneous) 성격이 강한 갈등이라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분단 이후 민주화 이전까지 우리 사회의 갈등의 성격이 세계적 냉전체제로부터 기인한 외생적(exogeneous) 성격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그리고 김대중 정 부시기까지 ‘침묵하는 다수’로 자처했던 보수우파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 면서 ‘행동하는 보수’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도 전혀 다른 현상이다. 진보좌파는 항일세력, 자주, 반독재민주화 운동의 역사적 계보 위에서 통일, 평화, 민주, 개혁세력으로 자임한다. 한국사회의 역학구도를 통일/ 반통일, 평화지향/전쟁추구, 민주/반민주, 개혁/반개혁 등의 이분법적 구 분 속에서 진보좌파는 반외세 민족주의적 성향을 보이는 한편, 북한체제에 대한 상당한 관용성을 발휘하고 있다. 반면 보수우파는 건국과 산업화의 10 統一政策硏究 주역이나 친일잔재세력으로 분단체제에서 친미·반공반북세력으로 탈바꿈하 면서 분단수혜층, 외세 기생세력, 수구 기득권세력으로 비판받아 왔으나, 오래 동안 한국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해왔다. 한국사회는 1987년에 형성된 정치균열의 구조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 는 형태로 1987년 6월 항쟁 결과 쟁취한 대통령직선제 구도와 함께 민주 화운동의 투쟁의 장(場)이 한편으로는 제도권 정치에 흡수되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시민사회의 폭발과 함께 다양한 시민운동의 형태로 나타나게 되 었다. 여기서 현 단계 한국사회의 정치구조의 특징을 ‘87체제’라 부른다면, ‘87체제’는 노태우 ‘6공정부’ - 김영삼 ‘문민정부’ - 김대중 ‘국민의 정부’ - 노무현 ‘참여정부’의 시기까지 진보세력의 점진적 득세와 보수세력의 경향 적 퇴조를 보여준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87년 이래 현재까지 한국 정치의 논쟁구도와 정치투쟁의 성격은 한국현대사의 역사적 분수령이라 할 수 있는 1987년 민주화 국면을 놓고 볼 때, 그 전후의 정치적 맥락은 뚜렷이 구분된다. 더욱이 현 단계 한국정치 구조는 ’87년을 계기로 전환된 정치 국면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이를 ‘87체제’로 규정할 수 있다. 여기서 ‘87체제’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1987년 민주화의 구체적 결실은 대통령 직선제 쟁취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국민의 명실상부한 자유선거에 의한 통치권자의 선택이라는 한국 헌 정사 초유의 정치적 사건으로, 그후 지금까지 한국정치의 갈등과 투쟁은 바로 이 대통령 선거를 둘러싸고 전개되었다고 하겠다. 둘째, 1987년 이 후부터 한국정치의 장은 운동의 정치로부터 제도권 정치로 옮아갔다. 이는 정치투쟁의 장이 바리케이트 정치로부터 국회 중심의 의회정치 영역으로 전환되는 것과 함께 절차적 민주주의가 자리잡아가고 있는 현상을 반영한 다. 셋째, 운동권 정치는 정당정치의 논리를 수용하는 한편, 보수적 정치 지도자의 영향권 아래 견인․흡수당하면서 대중정치의 틀과 논리를 수용 하게 된다. 그럼에도 정치영역에서는 아직까지도 도덕적 언술과 정치적 언 술이 구분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를테면 정치가의 리더십, 국가경영 능력, 비전 등의 정치적 미덕보다는 정치가 개인과 정치집단의 도덕성 문제가 중요한 판단과 선택의 준거가 되는 정치사회적 분위기의 지속은 ’87년 민주화의 열망과 정치적 지향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11 현재의 한국정치 구조적 특성을 ‘87체제’로 규정할 수 있다. 다시 보혁갈등 문제로 돌아와보면, 반독재 민주화시대에는 진보좌파세 력 대 국가공권력과의 충돌이 일반적인 현상이었다면 현 정부아래서는 시 민사회내의 좌·우, 보·혁 대결로 나타나는 한편, 보수우익 측에서 정부에 대한 비판세력으로 등장한 것이 새로운 현상이다. 특히 양측 모두 한국사 회의 미래지향적 대안 제시를 둘러싼 갈등이라기보다 반미친북의 ‘반전평 화’, 반북친미의 ‘반김반핵’ 등 네거티브 캠페인을 전개하면서, 규범적 가치 인 민족중시 논리와 현실적 가치인 국가이익 중심논리의 대립상을 보여주 고 있다. 반독재투쟁과 민주화운동을 통해 존재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진보 좌파의 경우, 좌파의 고유한 내재적 가치인 인권과 민주주의 문제를 북한 체제에 대해서는 침묵․방관하고 있는 점에서 좌파는 인류사회의 보편적 가치와 규범을 외면․왜곡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오히려 한국 사회의 인권과 민주화 과제를 외면하고 등한시했던 보수우익 측에서 정략 적 비판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 문제를 선점하고 나섰다. 이처럼 좌․우파는 서로의 이념과 가치기준이 전이된 상태에서 행 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진보좌파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의 관련 속에서 한국사회의 작동 메 카니즘과 대내외적 모순구조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통한 대안적 모색을 추구하려는 노력보다는 보수우익에 대한 혐오와 맹목적 거부를 통해서만 자기정당성의 근거를 찾으면서, 한국사회에 편만한 대미의존 성향에 대한 ‘반동’으로 이미 세계사적 차원에서나 민족사적 차원에서 국가존립의 의의 를 인정받지 못하는 북한체제에 대해 친북적 성향을 보이는 시대착오적이 고 자가당착적인 모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수우익에 대한 비난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 진보좌파의 존재의의는 회의적이며 미래는 불 투명하다. 민족사회의 향방에 대한 대안제시의 의지와 역량의 부재, 그리 고 역사적 방향감각의 상실이야말로 지금 한국의 집권 진보좌파의 위상과 모습이라는 비판도 새겨들을만 하다. 12 統一政策硏究 나. 햇볕정책과 상호침투 햇볕정책은 ‘대립과 갈등의 시대’로부터 ‘화해와 대화의 시대’로 전환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추진과정에서 국민적 여론수렴과 정책추진의 투명성을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지속적이고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을 부각시킨 아쉬움이 있다. 이는 국내 적 냉전의식의 문제도 있지만,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의 ‘목적정당성’에 대 한 지나친 확신으로 인해 정책적 ‘수단의 정당성’을 간과한 데에서 빚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럼에도 햇볕정책은 남북관계를 ‘화해와 대화의 시대’로 전환시켜야 하는 탈냉전의 역사적 과제에 부응한 정책이었으며, 햇볕정책 추진과정상의 문제점은 대결로부터 화해, 불신으로부터 대화로의 전환 과 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하는 예고된 혼란과 진통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화해협력은 언술 차원에서 담론적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이데올로기적 도그마 수준으로 자리잡은 측면도 있으나, 주목되는 사실은 햇볕정책·화해 협력은 남북한 사회에 각각 의도하지 않은 역설적 현상을 초래했다는 점 이다. 즉, 남한 사회에서 ‘민족화해’ 담론은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반미 분위기와 결합하여 대선국면에서 북한 김정일 정권에 상 대적으로 포용적인 정치세력의 집권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던 것이 다. 이와 더불어 햇볕정책은 북한 주민들에게는 남북한 인적·물적 교류를 통한 외부정보의 유입으로 체제 이반의 계기를 제공하면서 북한체제의 주 민통제력의 근간을 흔들어 놓았다. 말하자면 햇볕정책은 남북한 사회 양측 에 의도하지 않은 상호침투 효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상호침투의 결과 남 한사회에는 친북 분위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타나게 되었으며, 북한사 회에는 엘리트층의 부패와 독직 그리고 주민대중의 국가 통제망으로부터 의 일탈현상이 증대되는 한편 탈북자들의 말처럼 “낮에는 사회주의, 밤에 는 자본주의”의 사회분위기가 나타나게 되었다. 더욱이 화해협력정책에 의 한 대북경협은 북한 주민의 대남 적개심을 해소시키고 남한 사회에 대한 긍정적인 관심을 유발시키기도 했으며, 북한체제의 변화를 불가역적 상황 으로 이끄는 데 기여했다. 어쨌든 중장기적 전망에서 보면, 햇볕정책에 의 한 남북한 사회의 상호침투효과는 보다 개방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체제 중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13 심으로 민족사가 진전될 계기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Ⅲ. 국민통합: 균열점과 통합전망 현재 한국사회의 좌·우의 시좌구조(視座構造)는 김정일 체제의 북한과 그리고 미국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데에서 결정되는데, 좌파는 민족적 가 치와 ‘자주’를 앞세우는 반면, 우파는 국가이익을 앞세우면서 자유민주주의 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 한국사회의 이념적 문제를 ‘소모 적인 논쟁’으로 밀쳐버리지 말고 적극적인 토론영역으로 끌어들이는 작업 이 필요하다. 이 장에서는 보혁갈등의 근본적인 균열점을 세 차원에서 즉, 대북인식과 관련한 민주적 평화론, 대미관 그리고 통일관을 중심으로 접근 하고자 한다. 1. 북한과 민주적 평화론 김대중 정부의 대북시각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북한의 체 제는 이미 실패한 체제로 오래 지속될 수 없다. 둘째, 그렇다 해도 북한이 곧 붕괴할 가능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셋째, 비록 우리가 기대하는 것 만큼 큰 변화는 아니지만 북한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넷째, 그럼에도 북한은 대남전략 군사노선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유지할 것이다.5) 이러한 대북인식에 기반한 대북정책은 봉쇄정책, 불개입정책, 포용정책의 세 가지 옵션이 있을 수 있는데, 이 가운데 미국이 1970년대 동유럽에 구사했던 데탕트정책 즉 화해정책인 포용정책(내용적으로 화해협력정책, 비유법으로 햇볕정책)이 한반도 평화통일을 추구하는 데에 현실적으로 적용 가능한 정책으로 이해되었다. 나아가 포용정책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한반도 냉전구조가 해체되어야 한다는 인식아래 냉전구조 해체를 위한 과 제를 제안했다.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를 위해 우리 정부는 북한의 변화와 5) 임동원, “국민의 정부의 대북정책”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제2차 조찬포 럼> 1999년 3월 11일. 14 統一政策硏究 개방을 위한 여건조성과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주요 과제로 삼았다.6) 그런데 결과는 한반도 냉전체제 해체를 위한 정부의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 이는 미국 클린턴 민주당 정부와는 달 리 부시 공화당 정부의 강경한 대북정책을 문제 삼을 수도 있지만, 핵·미 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북한 수령체제의 고유한 속 성을 간과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더욱이 북한의 개혁·개방은 대외적 여건조성에 영향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개혁·개방은 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김정일 체제유지를 위한 종속변수의 성격이기에 체제유 지에 충격을 가하거나 마이너스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개혁·개방은 언제 든지 거부될 수 있다. 따라서 개혁·개방은 불가역적 상황에서 떠밀려 조금 씩 진전되거나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면서, 다른 한편 체제유지를 보장 받기 위해 군사중심주의와 대민통제기구의 강화와 함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게 된다. 요컨대 북한 수령체제 자체가 존속하 는 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냉전구조의 해체는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해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전제 는 북한체제의 ‘정상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미 20세기 전체주의 국가의 낡은 유제를 극복하고 시장경제 중심으로 경제성장의 안정적인 궤도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 민주화의 도정에 놓였다. 이처럼 과거 사회주의 국가로 한반도의 안보불안과 전쟁위협의 적대적 국가였던 중국과 러시아는 모두 시장경제 와 민주주의를 수용함으로써 이들 국가에 의한 안보위기와 전쟁가능성은 이제 비현실적인 것으로 되었다. 이렇게 볼 때 안보불안과 전쟁위협이 근 본적으로 해소되는 길은 주변 관련국의 체제적 성격, 즉 민주주의 체제의 6) 냉전구조 해체의 5가지 과제: ①남북대결과 불신관계를 화해와 협력관계로 전 환, ②미·북 제네바합의를 쌍방이 성실히 이행하면서 상호위협을 감소시키고 관 계개선, ③북한이 안심하고 변화와 개방을 추진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 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여건과 환경 조성, ④한반도에서 핵과 미사일 등 대량 살상무기 통제·제거, 군비통제 실현, ⑤정전체제의 남북평화체제로의 전환, 법 적 통일에 앞서는 사실상의 통일상황 추구 등. 김대중 대통령 CNN 위성회견 (1999년 5월 5일), 참조.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15 수용 여부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냉전구조 해체와 한반도의 평화는 곧 북한체제의 민주주의 수용 여부와 더불어 인류 보편 적 가치와 문명사회의 규범을 존중하는데 달린 문제라고 하겠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냉전체제 붕괴이후 전쟁과 평화에 대한 경험적 연 구를 통해 ‘국가는 민주적일수록 그들의 대외관계가 평화적이다’는 사실을 발견한 ‘민주적 평화론’(Democratic Peace)의 의의를 강조하고 싶다. 가. “민주국가끼리는 서로 싸우지 않는다(Democracies almost never fight each other)” 어떤 나라가 민주적일수록 그 나라는 평화지향적이며 더욱이 ‘민주국가 상호간에는 전쟁이 없다’는 명제는 1960년대 이래 민주적 평화론자들의 지속적인 연구관심사였다. 여기서의 민주주의는 근대적 국제체제에서 국가 간 평화를 논한 칸트가 말하는 통치방식으로서의 공화제의 연장선 위에 있으며, 이를테면 자유롭고 공명한 선거에 의한 지도자의 선출, 인권의 보 장, 권력분립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정치구조와 제도를 가리킨다.7) 현대 민 주주의는 일찍이 달(Robert A. Dahl)이 규정한 권력핵이 다원화되고 중 층적이고 상호 규정적인 권력구조(poliarchy)를 말할 수도 있으며, 헌팅 턴의 견해처럼 21세기의 민주주의체제는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후보자의 자유경쟁과 주기적인 공명선거가 보장되는 체제로 규정할 수도 있다.8) 어 쨌든 이들 민주적 평화론자들의 경험적 연구는 국가는 민주적일수록 그들 의 대외관계는 평화적이라는 사실을 밝혀 놓았다. 물론 민주국가의 경우도 폭력을 사용하고 전쟁을 수행하지만 적어도 민주국가끼리는 전쟁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러한 ‘민주적 평화론’에 대한 한 경험적 연구는 1789 년에서 1941년까지 116개의 전쟁에 대한 연구를 통하여 민주국가간의 전쟁이 없음을 증명하고 있으며,9) 일반적으로 민주국가까리는 서로 싸우 7) Bruce Russett, Grasping the Democratic Peace - Principles for a Post-Cold War World(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3), p. 3. 8) Samuel P. Huntington, The Third Wave: Democratization in the Late Twentieth Century(Norman: University of Oklahoma, 1991), pp. 7~9. 16 統一政策硏究 지 않는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10) 그렇다면 민주국가끼리 싸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대답은 지극 히 간단하다. 즉, 민주국가 지도자들은 전쟁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인 센티브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민주국가가 타국과의 관계에서 무력 분쟁의 길로 나아가면 국민은 전쟁을 정치의 연속이라고 본 클라우제비츠(Karl von Clausewitz)와 달리 그것을 다른 수단에 의한 외교정책의 연장으로 보지 않고 대외정책의 실패로 보기 때문이다.11) 민주국가의 정치지도자들 은 전쟁으로 생명과 재산을 잃기 꺼리는 국민들의 여론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민주적 평화론자인 러셑은 민주국가간에 전쟁이 없는 이유를 민주 국가의 규범-문화와 구조-제도를 통해 보다 분석적으로 설명하기도 한 다.12) 민주국가의 지배적인 규범은 평화적인 경쟁, 그리고 설득과 타협이 다. 비민주국가에서는 정책결정자나 독재자가 권력유지를 위한 국내정치 갈등이나 타국과의 갈등해결 방식으로 위협과 폭력적 수단을 손쉽게 선택 하나, 민주국가에서는 평화적인 규범-문화와 정책결정 구조가 그와 같은 폭력적인 수단의 선택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민주국가이면서 가장 많은 전쟁을 수행한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촘스키는 냉전시대 미국이 개입하지 않은 전쟁은 없었다는 입장에서 미국 이 테러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13) 20세기 미국 은 제3세계의 지역긴장 유지와 개입전쟁을 통해 ‘제국’의 신화를 유지해왔 다. 이는 일찍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그의 유명한 고별연설에서 경고했던 군산복합체가 지구상 모든 분쟁의 배후가 되고 있는 사실을 반증한다.14) 9) Dean Babst, “Elective Government: A Force for Peace,: Industrial Research(April 1972), pp. 55~58. 10) R. J. Rummel, “Libertarianism and International Violence,”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27, 1(1983), pp. 27~71. 11) Alex Mintz and Nehemia Geva, “Why Don't Democracies Fight Each Other?” 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37, 3(1983). 12) Bruce Russett, “The Fact of Democratic Peace,” Debating the Democratic Peace(the MIT Press, 1996), pp. 58~81. 13) 노암 촘스키 지음/장영준 옮김, 「불량국가: 미국의 세계지배와 힘의 논리」 (두레, 2001) 참조. 14) Dwight D. Eisenhower, “Liberty Is at Stake”(1961), in Super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17 그런데 민주국가인 미국이 지역분쟁을 조종하고 개입하는 상대는 대부분 비민주국가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예외적인 사례, 즉 미국이 민주적 국가 에 개입한 사례도 적지 않다. 물론 이 경우는 은밀한 정치공작과 배후조종 의 형태로 개입하는데 한국제주도(1948), 이란(1953), 과테말라(1954), 인도네시아(1957), 브라질(1961), 칠레(1973), 니카라과(1981) 등으 로, 이들 나라들은 국내적으로 민주적 절차에 의해 수립된 정부임에도 불 구하고 냉전시대 공산화나 친소 성향으로 기울어질 것을 우려하여 정부전 복 공작이나 분쟁을 배후 조종했던 것이다. ‘민주적 평화론’은 이처럼 민주국가인 미국이 민주국가인 제3세계 국가 를 전복시키기 위한 은밀한 공작이나 반정부세력의 배후조종 - 미국의 배 후조종에 의한 쿠데타세력이 집권한 경우 전 정부보다 훨씬 덜 민주적이 고 폭압적 정권인 사례도 많다 - 형태까지 포괄하여 설명하는 데에는 한 계를 지닌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산업화된 민주국가끼리는 갈등 적인 대외관계가 분쟁이나 공개적인 전쟁으로까지 발전되지는 않는다는 명제는 여전히 설득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서구유럽국가간, 또는 미국과 산업화된 민주국가간 분쟁이나 전쟁이 일어 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비평화적 전쟁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경험적 규범적 사실을 확인한다면 다시, “민주적일수록 평화적이다”는 명제의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러한 민주적 평화론은 하나의 ‘자기충족적 예 언’(self-fulfilling prophecy)의 효과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규 범이 행동을 규율하는 것이라면 규범의 내면화는 그 규범의 현실화로 이 끌 수 있다. “민주국가끼리는 전쟁하지 않는다”는 명제를 되풀이함으로써 (규범성) 민주국가끼리 전쟁하지 않을 개연성(실천성)이 강화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보편화에 상응하여 세계적 수준에서도 민주국가 상호간에 군 사적 대립과 전쟁의 가능성이 크게 줄어들 것은 분명하다.15)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체제 구축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의 목 -State: Reading in the Military-Industrial Complex, eds., Herbert I. Schiller and Joseph D. Phillip(Urbana, Ⅲ., 1970), p. 32. 15) 최상룡, 「평화의 정치사상」(나남출판, 1997), pp. 269~276. 18 統一政策硏究 표였을 뿐만 아니라, 현 정부 평화번영 정책의 기본구도도 마찬가지로 북 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억제와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을 통한 평화체제 구축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의지와 노력과는 달 리 냉전구조 해체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북한체제 자체의 속성과 분 리해서 접근할 수 없는 문제임이 여실히 증명되고 있다. 북한은 개혁·개방 을 체제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여기면서도, 체제보장의 안전판이 라 할 수 있는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의 포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주체국가’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체제보장을 얻어내기 위해 핵·미사일 카드를 활용하지 않을 수 없고, 미국 조야에서 언급되는 ‘정권 교체’(regime change)시나리오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체제유지 자 체가 지고(至高)의 선(善)이며, 개혁·개방, 대미정책, 대외정책, 대남정책 등 모든 대내외 정책을 체제유지의 목표에 둔다면, 남북관계와 한국의 안 보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는 북한 통치엘리트의 체제유지 목표에 종속될 수 밖에 없다. 만약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지역의 긴장이 미국의 국익에 유리하다고 판단한다면 북한 수령체제의 존재와 행태는 미국의 국가이익과 군수산업 의 이익에 기여하는 순기능적 역할을 하는 역설이 발생한다. 최근 미국 중 앙정보국(CIA) 산하 국가정보위원회(NIC)의 보고서에 나타난 한국의 포 용정책이 가져올 북한 변화상황에 대해 우려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16) 즉, 미국은 한국의 포용정책이 지난 50년간 주요 적대국이자 군사적 위협으로 보아왔던 북한이 남한의 포용정책으로 개혁·개방에 성공하여 민주적 국가로 전환하는 것이 미국의 안보패러다임에 도전이 되며, 주한미군 주둔의 명분을 약화시켜 한반도에 서의 미국의 전략적 입장이 수정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 다. 따라서 현 단계에서 미국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적극적일 이유가 없으며, 동북아지역에서의 미국의 위상과 역할이 축소 조정될 수 있는 북 한의 민주화 시나리오를 바라지 않고 있다고 추론된다. 16) US National Intelligence Council, North Korea's Engagement: Perspective, Outlook, and Implication: Conference Report(May, 2001), p. 6.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19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평화를 구축하는 길은 ‘민주적 평화론’에서 강 조하는 바와 같이, 남북한 모두 전쟁이 누구에게도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 는 국가일 때에만 가능하다. 북한의 민주주의만이 남북한 공존공영의 미래 를 보장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체제의 민주주의적 수용, 문명사회의 규범 과 인류 보편적 가치의 존중 등의 문제가 긴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된다. 물론 북한의 민주주의가 당위적 요청임에도 불구 하고 미국적 가치와 패권에 도전하는 “반(反)기독교, 반(反)민주주의, 반 (反)시장주의” 정권을 분쇄함으로써 민주주의의 강제화된 확산을 추구하는 미국의 신보수주의자들(Neo-Conservative: Neo-Con)의 신념에 전혀 동의할 수 없으며17), 또한 우리가 북한의 민주화를 강요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위기국면의 주기적 발생 은 결코 ‘냉전구조 해체=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의 패러다임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 는 전쟁을 일으키거나 위기국면을 조성할 필요도 없으며 국제사회에서 ‘불 량국가’로 규정될 이유도 없는 북한체제의 최소한의 민주주의적 형식과 내 용의 수용 태도 여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이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의 내용과 성격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이기도 하며, 통일한국의 정치체제의 미래와도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반도의 구조적 위기와 불안정 한 평화를 안정적인 평화체제로 정착시킬 수 있는 중장기적 전망 속에서, 북한체제의 민주화 문제를 우리의 인식체계 속에 편입시킴으로써 통일과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통합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다. 2. 대미관(對美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미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분단과 전쟁, 군부독재, 신자유주의적 세계 화. 이는 한국 현대사 자체로, 한국현대사의 모든 부정적인 형태와 극복해 야 할 대상의 배후엔 반드시 미국이 도사리고 있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 17) Statement of Principles, Project for the New American Century (PNAC, June 3, 1997), http://www.newamericancentury.org. 20 統一政策硏究 고 있다. 분단의 원흉이자, 남북한 화해협력과 통일을 가로막는 제국주의 적 외세로, 미국은 한국사회의 모든 악의 근원이다. 이러한 인식은 분명 충격적이고 새로운 현상이다. 촛불시위가 온 나라를 태울 수 있고, 적어도 반미전선에 동참하지 않는 정치세력의 집권을 좌절시킬 수 있었으며 친미 성향의 지식인과 정치가는 반민족적 반통일적 인사로 비난과 매도의 타깃 이 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전후 냉전체제의 형성기에 진영간 대결의 최전선으로 서 강대국간 패권정치의 제물이었다. 그러나 분단이 외세의 한반도 강점에 의한 것이었다면, 전쟁은 남북한 각각 미국과 소련의 외세를 배경으로 등 장한 정치세력이 외세에 의존하여 무력으로 통일을 추구하려한 과정에서 일어난 민족 내적인 문제였다. 분단이 국제정치의 논리에 의한 것이었다 면, 동족상잔의 전쟁은 무력통일을 추구한 북한의 정책적 결단에 의해 일 어난 것으로 북한의 예상과는 달리 미국의 개입으로 한국전쟁은 국제전으 로 비화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의 포성은 잠시 멎었으나 전쟁이 완전히 끝난 상태는 아닌, 전쟁도 평화도 아닌 상태가 반세기 이상이나 지속되고 있다. 역사적 가정이 허용된다면, 북한에 의해 한반도가 통일되었더라면 통일조국은 과연 우리가 소망하는 바람직한 나라였을까? 가. 반미감정: 집단적 자아발견 한국은 냉전시대부터 미국중심의 세계질서의 최대의 피해자이자 수혜자 이다. 한국의 국방은 미국에 의존적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구공산권과 북한 의 안보위협으로부터 미국의 의존적 보장을 받음으로써 한국은 경제성장 과 민주주의적 발전을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SOFA(한미주둔군 지위협정)개정, 한미동맹, 주한미군, 이라크 파병 문제 등을 둘러싸고 반 미감정이 고조되면서 한미관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는 종속적인 전통 적 한미관계를 극복하고 보다 ‘대등한’ 관계를 바라는 대중적 바람과 한국 인의 자주의식의 고양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반미감정을 한국인의 ‘집단적 자아발견’ 현상으 로 접근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미국 없는 한국’을 꿈꾸는(?) ‘민족주의적’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21 성향의 표출 현상은 오래 동안 잊혀졌던 정체성의 발견 즉, 집단적 자아발 견 현상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지난해 월드컵에서의 환희는 그야말로 ‘어 느 날 갑자기’ 한국의 젊은이들로 하여금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그처럼 자 랑스러울 수가 없었던 집단적 엑스터시 순간을 맛보게 했다. 그것은 광장 의 환희였으며 집단군무였고, 의식세계 밑바닥의 찌꺼기를 한꺼번에 뱉어 내는 집단 푸닥거리였다. 그들 젊은이들의 부모세대는 어떠한가. 식민지, 전쟁, 빈곤, 산업화와 독재, 정치적 부패...... 모두 우울하고 처참한 경험 뿐이었고, 이처럼 듣고 싶지도 않고 내세우고 싶지도 않은 ‘궁핍과 질곡’의 역사를 전세계의 지구촌을 향해 한 순간에 쓸어내리는 순간이었다. 전후 세대에 각인된 미국의 그 엄청난 무게도 그 순간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바로 이 시점에 동두천 두 여중생의 비보가 들려왔던 것이다. 여기에 촛불 시위는 한국 젊은이의 굴종과 예속의 역사의식에 불을 붙였다. 이처럼 자 랑스런 ‘자기찾기’ 형태로 나타난 집단적 자아찾기는 그동안 미군의 숱한 파렴치 범죄에 대해 굴종적 모욕감을 느끼면서도 참아왔으나 이제 더 이 상 인내할 수 없으며, 당당한 대한민국을 인정해 주지 않는 미국에 대한 집단적 분노의 표출로 반미감정이 폭발했던 것이다. 미국의 무게에 짓눌린 한국의 기성세대와 보수정치권은 물론, 미국조차도 이 촛불 속에 타고 있 는 당당한 분노의 힘을 이해하지 못했다. 나. ‘9·11’과 미국 ‘9·11’은 21세기 세계사를 읽는 열쇠 말이다. 미국의 패권은 ‘9·11’을 계기로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미국의 세계제패의 헤게모니는 지속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쇠락의 길을 걸을 것인가는 한국인의 대미인식에 중 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우선 미국의 쇠퇴 경향을 강조하는 입장이 있다. 왈러슈타인은 미국 대외정책의 매파들은 미국에 대한 도전에 힘으로 즉각 대응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정치·경제 영역에서의 미국 헤게모 니는 점차적으로 쇠퇴하고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는 현재의 미국을 ‘힘없는 초강대국’(The Powerless Superpower)로 규정하면서, 미국 스스로 이러 한 지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에 더 큰 한계가 있음을 지적하였다. 22 統一政策硏究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3번의 전쟁(한국전, 베트남전, 걸프전)을 통해 1번의 패배와 2번의 무승부를 기록하면서 ’70년대 이래 세계지배의 쇠퇴 경향을 보여오던 중 ‘9·11’을 통해 하강국면을 그리고 있다. 왈러슈 타인은 미국의 매파가 주도하는 이라크 공격은 미국의 ‘점진적인’ 쇠퇴국면 을 군사적, 경제적, 이념적 차원에서 보다 ‘급격한’ 쇠락의 길로 나아가게 할 것으로 경고했다. 문제는 미국 헤게모니 쇠퇴 여부가 아니라, 미국은 어떻게 하면 미국 자신이나 전세계에 큰 폐해없이 명예롭게(gracefully) 쇠퇴하느냐로 귀착된다고 주장한다.18)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이 미국 경제가 세계경제의 충격에 점점 더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는 통계 들도 주목된다.19) 그러나 이와 상반되는 주장도 통계 자료의 제시와 함께 우리의 관심을 끈다. 지금 여러 측면에서 미국의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지만, 미국의 국력 을 그렇게 호락호락하게만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 수 준에서 군사와 정치경제질서를 재편하고 있는 미국의 일방주의적 주도권 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여론이 거세지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떠한 국가도 단독으로나 집단적으로나 미국의 힘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에서 향후 미국의 군사적·경제적 패권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보는 전 망이 우세하다.20) 미국은 냉전체제 붕괴이후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가운데 스스로 세계의 경찰로 자처했으며, 그 결과 1990년대 초반부터 세계문제에 대한 책임은 18) I. Wallerstein, “The Eagle Has Crash Landed,” Foreign Policy, july-aug 2002. 19) 미국내 총생산(GDP) 성장률은 1940년대 4.47%, 50년대 3.92%, 60년대 4.05%, 70년대 2.79%, 80년대 2.64%, 90년대 0.9%, 1991년 -0.5% (폴 케네디, 「21세기 준비」(한국경제신문사, 1993), p. 373); 최근 미 국경제성장률은 50년만의 최저치 1%를 기록했으며, 부시 대통령 취임 당시 정부재정 흑자 전망은 최근 4천억 달러 적자로 수정. 가계부채 3조 5천억 달러로 증대. 부시 정부 출범 뒤 민간부문의 일자리 200만개 축소. 빈곤선 이하의 미국인 150만 명 가까이 증대. 민간의 주식보유액은 4조5천억 달러 로 축소(S. 해리슨, <한겨레>02. 10. 21). 20) 세계각국의 GDP(2001년) 미국 90,395억$, 일본 56,515억$, 독일 27, 019억$, 프랑스 18,123억$; 이춘근, “미국국력의 실체,” Opinion Leader's Digest 03-17(No. 222, 2003. 05. 28), www.cfe. org/OLD/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23 미국에게 돌아갔다. 이러한 세계문제들은 냉전시대에는 양극체제로부터 빚 어진 갈등으로 인식될 수 있었으나 이제는 모두 미국 때문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상황은 다음과 같은 요인들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은 세계 어느 나라도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국력, 특히 군사력을 가졌 다.21) 둘째, 유엔의 역할과 기능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셋째, 신국제 질서 아래 증폭되는 갈등, 여타 강대국들간이나 중간급 국가들간 정치, 경 제, 종교적·문화적 갈등이 계속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조정할 수 있는 국제기구나 조정자가 없다. 여기에다 지구상의 모든 대립각의 최 종 정점에 미국이 놓여 있다. 더욱이 “서구-기독교-백인문화”가 국제사회 의 만악의 근원이며 그 핵심이 미국이라는 인식이 만연되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 반미감정은 세계적인 현상으로, 반미대열에 합류하는 것만으로도 진보와 세계정의를 실천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크다. 이러한 데에는 두말할 나위없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세계패권을 관철하고자 하는 미국 일 방주의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미국은 오늘날의 국제사 회야말로 보다 대등한 민족국가 중심의 국제체제로 발전될 수 있기를 바 라는 세계 모든 국가의 염원과 세계의 양심적 지성인들의 호소에 귀를 기 울여야 할 때이다. 다. 국가발전전략 기본방향 21세기 국제질서에서 미국중심의 세계체제의 구축전략이 성공적으로 추 진될 것인지, 역(逆)으로 경향적 하강국면을 보일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속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적어도 10년 이내에 미국에 도전 할 수 있는 국가가 나타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으며 상당기간 미국의 세 계적 헤게모니는 유지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의 국 가발전전략의 수립과 통일을 위해 미국과의 미래지향적 관계설정을 모색 하지 않을 수 없다. 21) 2003년도 미국국방비 3,800억$(미국 GDP 3.2%), 전세계 모든 국가들의 국방 총액(7,500억$)의 50.7%. Berkowitz, The New Face of War (Free Press, 2003), pp. 4~8. 24 統一政策硏究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미국의 이해와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한반 도의 민족문제에 미치는 외세, 즉 미국의 규정력은 지대하다. 한국은 해양 세력과 대륙세력과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형평성’을 유지해야 하는 숙명적 긴장의 끈을 놓치는 순간 되돌아 올 수 없는 나락 에 빠지게 된다. 최근 우리는 ‘동북아경제중심국가’를 국가발전전략으로 삼 고 ‘동북아’ 담론을 활발하게 개진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러한 동북아 담론은 한국의 국가발전전략 방향의 일정한 중심축의 이동 현상을 가리키 고 있다. 즉, 과거 김영삼 정부의 ‘환태평양 시대’의 캐치프레이즈로부터 김대중 정부의 ‘한반도’ 중심론, 그리고 현 정부의 ‘동북아’ 담론으로 국가 발전전략의 방향이 환태평양-한반도-동북아로 이동하는 것으로 나타난 다.22) 동북아는 한반도와 중국 북부지방인 만주와 그리고 시베리아 지역 을 아우르는 지역 개념이나, ‘환태평양’으로부터 ‘동북아’로의 이동의 배경 에 미국으로 대변되는 해양세력으로부터 중국으로 대변되는 대륙세력으로 편향될 수 있는 경향성을 함축하고 있다면 상당히 우려되는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력으로부터의 점진적 이탈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을 잇는 가교(架橋)적인, 일찍이 일본이 스스로 서양문물과 동양문물을 잇 는 문명론적 시각에서 가교국가(bridging state)로 규정한 전례가 있지 만, 지정학적 특수성을 안고 있는 한국에게 어떠한 미래가 보장될 수 있겠 는가. 한국의 대외경제관계의 비중이 미국으로부터 중국 중심으로 전환하 고 있으며, 이러한 추세는 점차 증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중간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한․미간 경제관계의 비중을 크게 앞지른다고 하더 라도,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통일 문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과 역할 이 미국의 자리를 대체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의 고도성장이 경제 성장 과정의 일반적 패턴을 따른다면 억제되고 왜곡된 정치사회적 과제의 폭발로 인한 발전의 딜레마 국면에 부딪히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23) 22) 김대중 정부가 제안한 ‘ASEAN+3’의 개념의 유용성을 환기할 필요가 있는 데, 여기서 한국․중국․일본을 지칭하는 ‘+3’은 관련국 모두에게 긍정적 역 할을 제시하는 triple win-win 할 수 있는 개념이다. 23) 중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비관적 전망으로, 실업률과 사회불안, 부정과 부패, AIDS의 영향, 수자원과 공기오염, 에너지소비량의 증대와 가격문제, 국영업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25 어쨌든 중국의 경제성장과 발전에 따른 동북아지역의 역내 헤게모니 국가 로 부상한다고 하더라도 한반도의 통일문제에 대한 이해와 지지를 얻어낼 수 있다는 보장은 불확실하며, 오히려 중국의 전통적인 변방정책의 일환으 로 한반도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개입과 간섭정책을 구사할 개연성 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통일과정에서 미국의 지지와 협력을 도외시 하고 한미관계의 유대를 약화시키면서 대중(對中)편향성이 증대되는 이른 바, 탈미친중(脫美親中) 또는 적어도 미국과의 결별 경향성에서 우리의 미 래와 활로를 찾기는 어렵다. 따라서 21세기에 다시 쓰는 ‘한국책략’(韓國 策略)으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국가발전전략의 기본 방향을 다음과 같이 설정하는 데 큰 견해 차이는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즉, 한미관계에서 보 다 대등한 관계를 지향해 나가되,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과정에서 미국과의 미래지향적 상호이익의 공유를 통한 한미간 유대의 기반을 더욱 굳건히 다 지는 한편, 동북아의 공동의 번영과 미래를 위해 정치, 경제, 사회문화 등 각 분야에서 중국과의 연대를 공고히 구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테면 오래된 벗과 우의를 더욱 두텁게 하면서 이웃의 새 벗과 절친하게 지 내자는 말이다. 친미반중(親美反中)이냐 반미친중(反美親中)이냐 또는 해양 세력이냐 대륙세력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를 견인하는 두 세력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민족사의 진로를 하나의 주체적 실존으로 절감하는 지 기인식의 문제가 중요하다.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미국과 중국, 해양세력 과 대륙세력 사이의 어느 일국을 선택해야 하는 강요된 상황을 피해 나갈 수 있는 한국의 위상과 운신에 대한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라. 자주와 국가이익 체의 비효율성, 외국 투자의 감소 등의 7가지 감소 요인과 함께 ‘시장사회주 의’의 한계를 지적한 주장이 주목된다. Charles Wolf Jr. China; Pitfalls on Path of Continued Growth; The Asian nation's remarkable gains over two decades could easily slip away. Los Angeles Times, Jun 1, 2003. pg.M.2. 26 統一政策硏究 한국인의 대미인식은 최근 자주(自主) 문제와 연관되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자주의식과 한·미동맹 문제와의 긴장관계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 다. 자주는 외세에 대한 일방적 ‘배타적’ 태도가 아니며, 또한 그것에 대한 ‘동화적’ 태도도 아닌 국가목표 달성의 추구와 관련된 정치적 신중함 (prudence)과 균형잡힌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한반도의 대륙 세력과 해양세력의 중간지대인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숱한 피침의 역사 를 겪으면서, 근대국가 수립의 좌절과 국권상실로 인해 강대국의 간섭과 개 입에 대한 강한 반외세 저항의식을 내면화시켜왔다. 이러한 반외세 의식은 한국 근현대사의 정치의식을 규정해온 민족주의적 성향과 어울려 ‘자주(자 주성·자주의식)’는 도덕적·규범적 언술로 고양되어온 측면이 있었다. 최근 한미관계에서 제기되는 자주는 그 성격과 실천적 방법과는 무관하 게 반미감정의 형태로, 특히 민족 문제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한반도정 책에 대한 비판과 미국탈피 자주외교 주장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이 특징 이다. 이러한 반미감정과 자주의식은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외정책과 한국 민의 민족적 자긍심에 대한 미국측의 오랜 불감증과 외면으로 인해 미국 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여기에다 우리 사회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전 후세대인 젊은층의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의 성취에 의한 자신감과 남북한 화해협력 분위기의 고양에 따른 민족 미래에 대한 낙관적 기대감도 반영 되어 있다. 자주는 정치, 경제, 문화, 군사력 등 다양한 부문에서 한국의 대외역량의 증대에 비례하여 성취될 수 있는 대상이다. 국가 정책적·실천 적 차원에서 자주의 문제는 국가이익과의 관련 속에서 신중하고 타산적인 접근을 통해서 단계적·점진적으로 성취해 나가야 할 과제다. 핵문제 접근 과정에서 북한이 주장하는 반외세 ‘민족공조’는 자주와는 무관하다.24) 자주는 원칙적 입장, 한반도 현안에 대한 선언적 입장 그리고 향후 우 리의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한 비전 천명 등의 세 측면에서 표방될 수 있다. 첫째, 원칙적 차원에서 “우리의 운명을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입 24) 북한은 핵문제가 북-미간의 문제일 뿐 아니라 ‘남과 북의 조선민족 대 미국 과의 문제’라고 규정하여 민족공조를 강조하였다.(<노동신문> 2002. 10. 29); “‘우리 민족끼리’ 여섯 글자에는 조국통일을 위한 당의 근본입장과 근본 원칙, 근본방도가 함축”(<노동신문> 2003. 6. 13).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27 장이 중요하다. 이는 우리 민족의 운명이 강대국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면 서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던 좌절과 굴곡의 한국현대사의 통절한 반 성을 촉구하는 문제다. 둘째, 한반도문제와 관련하여, “한반도에서 어떠한 형태의 전쟁도 반대한다”는 입장의 선언이 절실하다. 전쟁은 우리 국가뿐 만 아니라 우리 민족 자체의 파멸이다. 따라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의 문 제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강력 한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다. 셋째, 향후 국제사회에서의 한국의 역할과 관련하여, “한국은 경제적 위상에 걸맞는 정치적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비 전 제시가 요망된다. 따라서 자주의식은 결코 배타적인 대외의식이 아니 라, 오히려 국제사회의 협력과 협조를 얻어내면서 국가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는 의지와 실천능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3. 통일관 :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지평 확대 한반도의 평화는 한민족의 통일보다 중요하다. 이는 평화와 통일의 이 중적 목표가치가 하나로 합치되지 않는 한, 평화가 통일에 우선한다는 뜻 이다. 그렇다면 남북한 긴장완화와 평화공존이 분단을 항구화하고 통일과 는 반대쪽으로 치닫는 길인가. 그렇지 않다. 통일과 평화는 반드시 배타적 관계는 아니다. 물론 평화를 위해 통일을 유보할 수는 있으나, 통일을 위 해 평화를 포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의 엄중한 과제는 평화와 통일의 협연(協演)을 추구하는 데 있다. 비록 통일을 먼 지평에 설정하더라도 통 일의 상(像) 즉, 어떤 방식의 어떤 사회를 지향하는 통일인가 하는 통일관 의 정립이 전제되어야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기반을 마 련할 수 있다.25) 남북한 어느 쪽이 통일을 주도해야 하는가, 이는 달리 말해 누가 통일 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정통성의 문제로 귀착된다. 사실 민족분단사는 25) 노 대통령, 통일고문회의 고문단과 오찬간담회(2003. 7. 24), “그 동안 저는 통 일이라는 말을 즐겨 쓰지 않았다”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즉 “‘어떤 통일이냐’ 에 대해 확고한 방향이 서있지 않기 때문에 자칫하면 평화를 깰 수도 있고, 국민의 안정된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도 있다”는 것이 노 대통령의 지적이 다. http://www.president.go.kr 28 統一政策硏究 정통성 쟁탈의 역사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남과 북은 각각 스스 로의 정통성을 상대방의 부정에서 찾았다. 민족사 담당의 주체의 선언은 항상 타방의 정통성과 자신의 정통성의 주장으로 일관해 오면서 공존을 거부해왔고 상호포용을 터부시해왔다. 상대방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자신 의 존재의의를 발견하고자 했다. 이러한 인식을 전제로 여기서 정통성의 문제를 세 차원에서 접근해보자. 첫째, 민족사의 주체 문제로, 남북한 건국세력 중 누가 식민지 지배하에서 끝까지 항일투쟁을 지속했느냐 하는 문제다. 긴말 할 것 없이 건국 주체의 성격 문제로, 이는 남한 정권의 아킬레스건으로 북한의 한판 승리로 끝난 다. 둘째, 그렇다면 어떤 사회를 만들려고 했는가? 이는 이념과 제도의 문제로, 북한은 집단적 공익과 평등적 분배정의의 이념에 기반한 사회를 만들려고 했고, 남한은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중요시한 자유시장의 이념을 선택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이념과 제도에 기반한 체제경쟁은 이미 승 부가 끝났고,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미래시간 내에 승부가 역전될 전망은 거의 없다. 셋째, 이 마지막 요소를 앞의 두 요인보다 더욱 중요한 변수라 고 볼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앞의 두 요소에 수긍하지 않아도 좋다. 참 다운 정통성은 남북한 체제를 넘어 어느 쪽이 문명사회의 규준에 부합하 는 인류 보편적 가치관과 인간존중의 삶의 양식, 그리고 인간존엄성과 미 래지향적 가치관을 지향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다. 과연 어느 쪽이 이러한 규준에 보다 부합되며, 적어도 남과 북 어느 쪽이 그러한 가능성을 보여주 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러한 논리를 북한측에 당당하게 밝혀도 좋다. 이념과 체제의 우위논쟁을 유도하자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나 남한이나 우 리 민족이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 명확한 목표지점을 설정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통일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은 마치 숲을 보고 나무를 보면서 가지와 잎사귀를 논하듯이 접근해야 한다. 거시적으로 보고 전략적으로 접근하고 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양자를 병행해서 접근 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고,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계적 으로 접근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점에서 통일의 로드맵이라 할 수 있는 이정표(里程標)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정표를 마련하는 작업에 앞서,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29 국민적 합의의 토대 위에서 통일의 원칙과 방향이 설정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전쟁은 통일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통일원칙은 평화적 합의통일에 초점을 둔다. 평화적 합의통일의 원칙아래 두 가지 가 능한 통일 시나리오는, 미국-캐나다 모델(2국체제)과 통합적 자유민주주 의 모델(1국체제)로 상정할 수 있다. 가. 2국체제: 평화공존의 제도화를 통한 미국-캐나다 모델 이는 간단한 신분확인만 거치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미국-캐나다 관계를 남북한 관계의 모델로 상정한 것으로, 이론적으로는 연방제론 또는 남북연합론에 닿아있다. 이 모델은 남북한 장기적 공존을 전제로 북한의 성공적인 개혁·개방에 의한 연착륙 형태로, 한반도에 두 개의 민주국가가 병립하는 상태다. 이는 상당한 시간을 요하지만 궁극적으로 북한의 경제적 시장경제와 정치적 민주주의체제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통합모델이다. 그러나 이 모델은 북한 수령체제의 존속과는 병행할 수 없는 형태로, 북한 수령체제 해체 후 북한사회가 상당한 수준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상태를 전제하고 있다. 남북한간 장기간의 화해협력을 통한 통합모델은 완전한 1 국체제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민주주의체제로 전환된다면 남북 한은 비록 2국체제이나, ‘사실상’(de facto)의 통합을 이룬 상태와 마찬가 지라는 인식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는 현 단계에서 ‘법적’(de jure)․ 제도적 통합을 추구할 경우, 북한은 이를 남한의 흡수통일 의도로 규정하 여 반발함으로써 남북한 화해협력 구도가 파행될 수 있는 측면을 반영한 논리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2국체제인 미국-캐나다 모델은 가장 바람직한 통합형태라고 할 수 있지만, 이는 북한 통치층의 개혁․개방 의지와 체제관리 능력에 달린 문제라는 점에서 현실적 가능성의 측면에서 낙관적인 전망이 높지 않다. 나. 1국체제: 통합적 자유민주주의국가 30 統一政策硏究 한국통일의 시나리오는 대개 남한 중심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사회로 의 북한의 편입(흡수)을 상정하고 있다. 남한 중심의 통일 시나리오의 가 장 체계적인 완결판은 미국CSIS(Center for Strategic & Int'l Studies)의 2002년 8월의 한 정책보고서라 할 수 있다. 이 보고서의 제 목은 “통일 한국을 이룩하기 위한 미국 정책의 청사진”으로, 미국인과 한 국인의 다수의 전문가가 참여하였다. 여기에서는 “한반도에서 통일국가의 등장은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제하면 서, CSIS는 3가지 통일 시나리오로 평화통일, 붕괴흡수통일, 전쟁통일 (북한패망)로 전망했다. 한반도의 통일은 한국 정부의 통치권이 한반도 전 역으로 확대하는 것으로 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26) 한편 미국 CIA가 전망한「2015년의 세계」에서도 2015년 시기엔 통일한국이 동북아 군사 강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27), 남한 주도의 통 일한국에 대한 전망이 우세한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실현가능성이 높은 통일형태는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남한체제 중심의 통일이다. 그 반대 방향 즉, 북한식 수령중심체제 또는 ‘우리식 사 회주의’가 유지되는 방향으로의 남북한 통합은 21세기 세계사의 흐름과 조화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민족사의 바람직한 발전방향과도 부합되지 않 으며, 더욱 현실적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데에 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 러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현실적 가능성이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요청 하고 합의를 기대할 수 있는 도덕적 힘을 지닌 것은 아니다. 남한 사회의 불평등성, 비인간적 경쟁체제, 물신주의, 문화적 예속성 등 우리 사회의 고유한 모순이 해소·극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한 중심의 통일방식은 북한 지역을 점령지화하여 약탈하고 북한주민들을 이등 국민으로 만드는 ‘내부 식민지’ 형태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부 터 많은 비판과 저항에 직면할 것이다. 이를테면 통일에 대한 ‘현실’ 논리 는 항상 힘의 논리이며, 사회경제적 강자의 논리에 부응하기 때문에 ‘현실’ 26) CSIS, A Blueprint for U.S. Policy toward A United Korea: A Working Group Report of the CSIS International Security Program(August 2002). 27) NIC 2000-12(December 2000), Global Trends 2015: A Dialogue About the Future with Nongovernment Experts(http://www. cia.gov/).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31 논리만으로 통일문제에 대한 국민통합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통일문제에 대한 접근방향에 있어서 현실적 가능성의 측면과 사회정의 차 원의 규범성이 동시에 고려되지 않으면 국론통일, 국민통합은 하나의 구호 에 그칠 뿐이다. 동서독 통합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은 양 체제의 비교적 높은 친화성 (affinity)이야말로 통합을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게 했던 배경이었다는 점이다. 서독은 유럽에서도 높은 수준의 사회보장국가로, 자본주의 시장경 제에서 가장 좌파적 이념체계라 할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의 전통과 굳건 한 토대를 확보하고 있었다. 동독은 동구사회주의의 진열창으로, 가장 발 달된 선진사회주의 국가였다. 이런 배경 속에서 양 체제의 통합은 이념 및 체제 통합차원에서 서로 한걸음씩 양보하는 형태로 통합과정에서 큰 갈등 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를테면 서독은 전통적인 사회보장국가 체제에서 동 독에 대한 경제적 부담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당연히 감내해야 하 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와 함께 동독 주민들이 국가(계획) 중심 에서 시장중심사회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가혹한 개인책임사회의 충격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서독의 대대적인 지원정책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서독 사민주의 국가의 노동계급 중심의 정치체제와 이념과 사회주 의 국가의 동독 주민들의 가치체계가 서로 친화성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 이라고 하겠다.28) 자유민주주의는 그 역사만큼 폭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자유민주 주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와 조응하는 본질상 우파적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으나 사회정의, 국민복지, 계급조화 등을 긍정하는 진보적 속성도 지 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념적 탄력성이 크다. 자유가 박탈된 강제적 평등사 회의 한계가 폭로되는 데 70여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면, 사회정의가 배 제된 자유의 야만성과 폭력성을 만나는 데 불과 10여년 시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통일은 남한 중심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이루어질 개연성이 높 다.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 사회는 더욱 민주화되고 자유와 함께 계층간 조 화와 형평성을 높여나가야 공동체적 구심력을 추구할 수 있고, 국민통합의 28) 북한 김정일은 사회국가 스웨덴 체제를 가장 선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브라이트 미 전(前)국무장관 회고록, <중앙일보>, 2003. 9. 17. 32 統一政策硏究 기반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다. 통일한국의 미래상에 대한 좌·우파간의 간 극을 좁히고 접점을 확대시키기 위해서는 분단시대의 냉전적 반공주의로 구현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한계를 극복하는 한편, 평등의 가치와 - 평 등은 결과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기회균등 및 출발조건(head start)의 균등상태를 지향하면서 개인적 능력과 창조적 활동에 따른 보상 체계도 함께 고려되는 조화로운 사회정의론에 입각한 평등론으로서 - 사 회국가의 이념을 포섭하는 차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이념적 지평을 확대 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Ⅳ. 국민통합 방향: 양극(兩極)을 넘어 모든 중간(中間)은 중용(中庸)이 아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중간파는 남 북한 어느 쪽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실패한 역사로 중간파, 중간영역은 언제나 그렇듯이 어느 쪽도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으며,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이념적 극단을 경계했던 민족주의자들의 호소도 양 극 단의 논리를 극복할 수 있는 통합력을 보여주지 못했던 데에 한계가 있었 다. 지금도 마찬가지다.29) 좌파와 우파의 양 극단의 한계를 지적하고 상 호이해를 강조하는 조화노선은 진보·보수 양측으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된 다. “어느 쪽이냐”는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양측의 문제점을 비판 하는 중간노선은 설자리가 없는 상황이다. 1. 합의창출의 전제 국민통합은 과불급(過不及)이 아닌 중용의 길을 찾는 일이다. 달리말해 29) 수구기득권층과 ‘안보상업주의’ 및 ‘물신기독교’(christian fetishism)가 보 수우파로, 그리고 주사파가 진보좌파로 자처하는 현실이 한국 사회에서 합리 적이고 ‘건강한’ 보수주의와 이성적인 진보의 가치를 왜곡시키고 있다는 지적 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33 ‘다양성 속에서 통일성’을 찾는 길이요, ‘통일성 속에서 다양성’을 모색하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통합의 지표를 산술적 평균에서 찾을 수는 없다. 국민여론의 평균치를 존중한다고 해서 국론통합에 근접하는 것은 아 니다. 특히 대북정책이나 안보 분야의 경우 해당 사안에 대한 전문성과 여 타 국정분야에 대한 파급효과를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경륜있는 그룹의 견해는 감정적이고 정치적 선동에 영향받는 국민여론보다 중요하다. 또한 안보 외교 분야는 국민여론에 노출되는 상태가 반드시 바람직한 것은 아 니며, 국가이익을 위해 공개될 수 없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정책 결정과정 에서 국민여론을 참고하고 존중해야 하나 국민여론이 정책결정의 준거가 될 수는 없다. 통일정책을 둘러싼 보혁갈등을 극복하고 국민통합을 이루어나가기 위해 서는 각각의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기본 인식이 요망된다. 첫째, 정치지도자의 통찰력과 리더십이 절실히 요청될 수밖에 없다. 이 는 정치지도자의 존재이유이기도 하다. 국회의 존중과 정당정치의 활성화 를 통해 국민여론을 제도정치권에서 수렴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국민통합을 위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은 막중하다. 국론 통합은 커 녕 자칫 국론분열의 소지를 제공할 수 있는 복합적 상황에 대한 면밀한 이해를 바탕으로 설득과 타협을 끌어낼 수 있는 조정능력이 요구된다. 이 와 함께 중요한 국가발전전략과 대북정책의 큰 틀은 공청회 개최, 공개 세 미나 등을 통해 학계 언론계 등 전문가 그룹과 오피니언 리더들과의 충분 한 논의와 의견 수렴을 거쳐 정책결정에 이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국가 핵심정책이 소수의 이너서클(inner circle)에 의해 은밀히 급조된 후 불 쑥 공개하는 형태는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으며, 사후 대국민 홍보 와 설득을 통해 이해와 지지를 요구하는 관행에서 국론통합을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라 하겠다. 이런 점에서 정부는 문명사 적 전환기에 국가와 민족의 미래지향적 방향 위에서 공청회 공개토론회 등을 통해 장기적 전망의 국가발전전략과 통일정책 수립과 관련한 국론을 수렴하는 노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 국내차원에서는 균형성장을 추구하 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진보적 성향의 정책을 추진할 수 있으나, 국 제관계와 대북정책에서는 국가이익 우선의 현실주의적 노선을 수용하는 34 統一政策硏究 것이 바람직하다. 어느 국가나 대외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국민적 이해와 지 지를 끌어내는 데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는데, 우리도 대외관계의 중요성 못지않게 국민적 지지를 얻어 내기 위한 ‘대(對)국민 외교’(public diplomacy)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경우 평화, 대 북인식, 대미정책, 통일문제 등의 국제적․민족적 문제를 효율적으로 추진 하고 더욱이 남남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정책 수립과 추진과정에서 국 민적 이해와 지지를 구하는 노력이 절실한 실정이다. 특히 국민교육의 일 환으로 국제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 수준을 높여 나감으로써 남남갈등 을 희석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국제사회 속에서의 북한, 또는 국제문제와 연관된 한반도의 위상 등을 충분히 인식시킴으로써 경쟁과 협 력의 세계 속에서 생존하면서 미래를 모색해야 하는 엄중한 현실 앞에서 남남갈등이 얼마나 자기파괴적인가를 성찰할 수 있게 된다. 셋째, 공동체의 조화와 구심력을 유지하려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균형감 각과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지나친 자기확신과 독선에 찬 이념형적 인간 은 바로 지식인이나 사회지도층 인사들로, 이들 오피니언 리더들이 어느 면에서는 증오와 갈등을 부추기는 ‘편 가르기’의 주역을 맡고 있다는 점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에겐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 지지 않는 절제된 균형감의 유지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는 실정이다. 2. 국민참여 확대: 시민단체의 위상과 역할 온-라인(On-Line) 및 오프-라인(Off-Line) 양 측면의 활용을 병행해 야 할 것이다. 온라인 세대는 변화 지향적 세대로 능동적·창조적 행위 양 태와 더불어 「참여정부」의 통일정책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 는 비교적 젊은 30·40대 연령층으로 인터넷을 생활화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과 민족문제에 대해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하며, 보다 책임있 는 인식과 대안 모색적 노력이 요망되는 세대이다. 오프라인 세대는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급속한 변화에 쉽게 적응하기 어려운 중장년 세대로 소수 예외적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인터넷 문화보다는 신문 TV 등 전통적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35 매체에 익숙한 세대로 50·60대 연령층이다. 이 세대는 통일 및 안보정책 에 대해 정부의 보다 안정적인 접근을 바라고 있는데, 정부가 온라인 세대 만을 ‘국민참여’의 주된 파트너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들을 불 식시키기 위해서도 오프라인 세대를 적극적으로 포섭해야 한다. 시민단체(NGO)의 정책결정 수립과정에의 역할과 위상은 신중하게 검 토될 때라고 생각된다. 시민단체의 열정과 신념은 존중되어야 하나, 시민 단체의 비전문성과 무책임성에 대해 시민단체 스스로의 깊은 자각이 필요 한 시기다. 비록 전문적인 학자 그룹이 참여한 시민단체의 경우에도 특정 사안의 주장과 그것의 영향과 파급효과에 대한 ‘책임으로부터의 자유’에서 연유하는 언행의 무게를 보다 진지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비정부 시민단체의 역할과 의의는 점차 증대되고 있는 추 세이다. 여기서 정당과 시민단체와의 관련성을 잠시 살펴보자. 근대국가의 정당은 특정한 계급․계층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한편 국민적 대중정당 을 지향하면서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치조직으로, 시민사회를 전반적으로 포섭할 수 있는 근대국가의 틀 내에서 정당정치는 정치적․이념적 갈등과 다양한 사회경제적 이익단체들의 이해관계를 수렴하여(투입 input) 특정 한 정책으로 반영(산출 output)하는 기능과 역할을 담당해왔다. 이처럼 근대국가가 시민사회를 충분히 포섭하는 조건, 달리 말해 시민사회 내의 모든 갈등 형태가 정당정치의 틀 속에서 해결될 수 있는 토대 위에서 근 대민주주의의 이념인 대의(代議)정치=의회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작동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민주주의 사회는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전통적 인 국가가 시민사회의 모든 영역을 커버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가 자 체가 엄청난 규모로 증폭된 시민사회의 자율적 제활동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이러한 현실 속에서 근대국가의 전통적 정당이 시민사 회의 폭발적이고 변화무쌍한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데에는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거대한 조직체로서의 대중정당은 시민단체에 비해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이해와 접근방식에 있어서 신속한 대응력이 떨어 지며 이해관계의 수렴 능력도 구조적으로 취약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정당정치의 구조적 한계가 나타나고 있는 변화된 상황 속에서 시민사회의 다양한 주장과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증대되 36 統一政策硏究 는 경향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현대 시민사회의 새로운 모습이라 할 수 있 다. 따라서 정당정치는 폭발적인 시민사회의 규모 증대에 부응할 수 있는 조직체계와 능력을 갖추는 것도 급선무이지만, 어쨌든 정치적, 경제적, 사 회문화적 모든 분야에서의 시민단체의 역할이 한층 증대될 것은 틀림없다. 한국 사회의 시민단체는 ‘87년’ 이후 시민사회의 폭발적 분출과 더불어 체제변혁적 민주화 운동으로부터 시민운동으로의 전략적 전환과정에서 진 보적 좌파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나타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시민운동은 전통적 정당의 정치적 대표체계의 한계를 비판하면서 정치엘리트의 배출 통로로 기능하기도 했으며, 특히 현 정부의 집권 자체가 진보적 시민운동 의 총결산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다는 점에서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시민 단체에 대한 정치적 관심이 크게 부각될 수 밖에 없었다.30) 시민단체는 대중정당보다 한층 효율적으로 시민사회의 다양한 영역에 접근하면서 정치사회적 이슈를 발굴하고 문제 해결의 비전을 제시하는 순 발력과 함께 보다 높은 수준의 전문성을 배양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공동체의 존망과 미래의 명운이 달린 통일과 대북정책 등 사활적 인 국가 주요 정책은 규범적 판단과 도덕적 신념에 충실한 뜨거운 가슴으 로 접근될 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 대한 인식의 공유도 널 리 확산되어야 한다. 통찰력과 냉철한 이지(理智)를 지닌 차가운 머리가 요구되는 상황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지금 신념과 열정에 사로잡힌 시민 단체가 우리 사회에서 보혁갈등의 중심에 서있고 ‘편 가르기’의 주역이라는 역설적 현상에 대한 자기성찰이 기대된다. 3. 합의창출의 방향 가. ‘최소주의적 합의’(Minimalism of Consensus) 30) 현 정부에 와서는 한국사회에서 참다운 의미의 비정부기구(Non Govern -mental Organization: NGO)는 사라졌고 과거의 진보적 NGO는 지금은 모두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친)정부기구(Governmental Organization: GO)로 전락했다는 지적과 함께,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고 있는 진보․보수의 각양각색의 시민단체의 정치사회적 폐해도 경계되어야 한다.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37 최소한 좌·우 모두 양 극단은 배제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국민적 컨센서 스를 이루자. 성조기·인공기 불태우기, 한총련 탱크 시위, 대구유니버시아 드 대회 중 북한자극 행위, 협박과 위협 시위 등 자극적·반(半)폭력적 행 위는 우리 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그처럼 동맹국 미국과 화해협력의 파트너인 북한을 자극하거나 반대견해를 밝힌 사람에 대한 모욕과 협박 등 극단행동은 퇴출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이러한 돌출적 극단행동이 관용 된다면 앞으로 더 큰 폭력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행위에 대 한 옹호와 비난 등의 소모적 논쟁은 우리 사회 자체를 피폐하게 만들 뿐 이다. 따라서 사회적 규범을 벗어나는 비시민적 극단적 행동에 대한 한계 선(Red Line)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극소수의 과격행동에 대한 무절제 하고 원칙없는 수용은 법치주의 공화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일이기 때문 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가공동체를 유지하고 존속시키기 위해 양 극단의 배제, 법치주의 존중 등의 최소한의 규범 준수에 대한 그야말로, ‘최소주 의적 합의’에 동의할 필요가 있다. 나. 성찰적 태도 보수우익은 이제는 합리적인 발언임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비판하는 발언은 모두 좌파적·혁명적으로 몰아붙이는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 미래에 대한 비전은 전혀 없고, 보수기득권의 이익과 자리에 대한 지나친 방어와 집단히스테리 현상은 국민들의 혐오감을 유발할 뿐이다. 스스로 거울에 비 친 얼굴을 들여다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전통과 관습의 규범적 가치를 존 중하는 참된 보수주의는 그들의 덕목인 도덕성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보여 야 한다. 진보좌파의 입장도 물론 예외는 아니다. 문명사적 전환과정에 이 념적 편향성은 세계사적 조류와 부합하지 않는다. 특히 대북인식은 민주주 의와 인권 등 문명사회의 보편적 규범과 함께 우리 인류가 성취해온 보편 적 가치기준으로 바라보아야 할 때이다. 진보좌파는 보수우익의 과거와 기 득권에 대한 비판과 비난에 앞서 책임질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제시로 국 민 앞에 나서야 한다. 38 統一政策硏究 다. “같음을 지향하되, 차이를 존중한다”(求同存異) 우리 사회의 좌파와 우파의 문제는 설득과 타협의 관계가 아니라, 지속 적 대립과 대치의 관계로 정립되어 왔다. 우리에겐 변증법적 지양을 통한 좌우대립의 새로운 통합원리(合: Synthese)가 나타난 경험을 찾기가 어 렵다는 점에서, 동양적 사유형태로 ‘서로 다른 것을 지향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존재양식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국민 여론 의 다양성과 상호 충돌, 그리고 갈등표출 영역을 확인하면서 상호공존, 즉 ‘화이부동’의 가치와 존재양식을 배양시켜 나가는 것도 바람직하다. 라. 이분법적 구도 타파해야 남남갈등 해소 또는 국정 현안문제 해결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 좌담 등은 좌·우 갈등현실을 확인시키는 결과를 낳거나, 더욱이 갈등해소에 기 여하기는 커녕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패이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경우를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서로 다른 입장을 대립적으로 부각시키는 신 문의 기획편집 방식, 서로 마주보면서 대립각을 세우도록 하는 TV 토론방 식은 시청률에 승부를 거는 방송의 기본 속성이나 오히려 갈등구도를 더 욱 선명히 하면서 갈등해결의 전망을 왜곡시키게 된다. 이러한 모습 등은 극복되어야 하며 서로 중간 지점을 확대시켜 나가고, 절충적 입장과 조화 를 모색하는 방식들을 관행화시킬 필요가 있다. 마. 양극(兩極)을 넘어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은 조화와 상생적 가치를 추구하는 사상으로, 우 리의 전통사상의 맥박 속에 연면히 흐르고 있다. 화쟁은 다양성이 상극성 (相剋性)으로 타락하지 않고 통일성이 획일성으로 전락하지 않는 정신문 화의 뿌리라 할 수 있다. 통일과 민족화합을 바라보는 우리는 누구나 보편 화되기 어려운 특정 견해에 대한 집착과 아집(我執)에 사로잡혀 굴절된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민족사에서 최초로 통일을 성취한 통일정책과 국민통합: 보혁갈등을 넘어 39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을 목격한 원효(元曉)는 진리(法)에 이르는 길을 제 시함으로써 분열의 시대상을 넘어 통합의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는 진리에 대한 잘못된 가설을 극복하고 그 가설에서 나타나는 의심을 제거 하기 위해 ‘일심’(一心)법을 세우고 ‘이문’(二門)을 열었다. 여기서 ‘일심(一 心)/이문(二門)’의 사상은 진리가 일원적이냐 이원적(다원적)이냐 하는 양 자택일적 논리를 넘어서있는 경지와 차원을 뜻하는 것으로, 진리의 세계 (眞如門)나 생멸의 세계(生滅門)나 서로 다르지 않은 근원(一心)의 각각 의 모습일 뿐이다. 진리를 깨닫는 마음이나 생사번뇌의 세계를 체험하는 마음은 다같은 하나도 아니요(非一), 그렇다고 각각 다른 두 개도 아니다 (非異)는 논리이다. 여기서 원효의 ‘화쟁(和諍)’ ‘화회’(和會) 사상이 나타 나는 계기를 보자. 만약 서로 상이한 견해가 서로 쟁론을 벌일 때, 유견(有見)과 같 다고 말하면, 공견(空見)과 다르게 되고, 만일 공집(空執)과 같다고 말하면 유집(有執)과 다르게 되어, 같다고 또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바가 더욱 세차게 싸움을 벌이게 된다. 또 다시 그 두 개가 같다고 하면 그 둘이 내부에서 서로 다투게 되고, 다르다고 하면 둘이 갈라 져 싸우게 된다. 이런 까닭에 비동(非同) 비이(非異)라고 말해야 한 다. 비동(非同)이라는 것을 말 그대로 취하면 모두가 허용(許容)하 지 않음을 뜻하고, 비이(非異)라는 것을 뜻으로 말하자면 불허함이 없음을 뜻한다. 비이(非異)라고 함으로써 그 감정에 어긋나지 않고, 비동(非同)이라고 함으로써 도리어 어긋나지 않는다. 감정상으로나 논리상으로 서로 어김이 없다.31) 화쟁(和諍)은 단순히 싸움을 말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온갖 대립과 반 목을 해소할 수 있는 통합원리이다.32) 원효의 통합논리가 우리 시대의 원 리로 새롭게 부각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개인과 집단 모두에게 상극 31) 원효, 「금강삼매경론」(삼성출판사), p. 466. 32) 김형효, “원효사상의 현재적 의미와 한국사상사에서의 위치,” 聖·元曉 大심포지 움(1987. 11. 1~2, 서울) 「원효연구논총」(국토통일원 조사연구실), 참조. 40 統一政策硏究 (相剋)보다는 상생(相生)의 결과를 가져다주기 때문이다.33) 성경의 말씀도 마찬가지로, 치우침과 극단을 경계할 것을 가르치고 있 다. 모세를 계승한 여호수아에게 여호와께서 일러주신 말씀은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 하리라”(여호수아 1-7) 했듯이, 편견과 아집의 좌·우 극단논리에 큰 경종 을 울린다. 진보좌파나 보수우익이나 모두 한반도의 평화를 갈구하고, 통일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인간존엄성과 삶의 질이 보장되 는 그러한 민족사회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말 하자면 평화, 민주주의, 인간존엄성의 가치 등은 결코 서로 다를 수 없는 ‘하나의 근원(一心)’이 아니겠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진보좌파와 보수우파는 대화와 토론을 바탕으로 아집과 억견을 극복하고 마침내 서로 갈등적이었던 견해의 상호침투를 이루는, 가다머(H. G. Gadamer)의 표 현을 빌면, ‘지평의 융합’(Fusion of Horizons)을 기대할 수 있다. 33) 근대화 논리는 이분법적 흑백논리(友/敵, 옳음/그름, 선/악, 근대/전통, 능률 /비능률, 효율/비효율, 성공/실패, 성장/분배, 자유/평등)에 기반하여 중간적 공존영역 거부로 나타난 특성이 있다.